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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4 Did the Civil War Further American Democracy? A Reflection on the Expansion of Benefits for Union Veterans (by Theda Skocpol) 본문
Ch. 4 Did the Civil War Further American Democracy? A Reflection on the Expansion of Benefits for Union Veterans (by Theda Skocpol)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8. 11. 11:24Theda Skocpol ed. 1998. Democracy, Revolution, and History: Cornell University Press
Ch. 4 Did the Civil War Further American Democracy? A Reflection on the Expansion of Benefits for Union Veterans (by Theda Skocpol)
(2013.08.11 김정민)
서론
배링턴 무어는 미국의 남북전쟁(Civil War)를 “마지막 자본주의 혁명”, “경쟁적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 전초전”이라고 표현. 스카치폴의 논문은 미국의 정치 발전에 있어서 남북전쟁이 갖는 의의에 대한 무어의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남북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연금 제도가 전후 미국에서 포괄적 사회 민주주의(socially inclusive democracy)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주장함
Moore on the Consequences of the Civil War (p 76)
무어는 미국에서 노예제는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을 저해하지는 않았으나 정치적 사회적 민주주의에 걸림돌이었다고 주장. 남북전쟁에서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북부의 승리는 전후 복구 시기에 급진적인 토지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함으로써 반민주적 경향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것이었으나, 전체적으로는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
The Dimensions of Civil War Pensions (p 80)
1880-1910년 사이에 미국 연방정부 지출의 1/4이 연금에 지출됨. 결과적으로 19세기 후반 미국이 때이른 복지국가였다고 볼 수 있음
The Civil War-Necessary but Not Sufficient
미국의 남북전쟁은 최초의 현대적 전면전으로, 성인 남성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징집이 이루어진 ‘민주적’ 전쟁이었음. (p 81)
프랑스 혁명의 경우 혁명 후 관료에 의한 연금 분배가 이루어짐으로써 연금 수령률이 혁명 중에 비해 점차 낮아졌으나, 미국의 경우 중앙 관료제가 아닌 연방적 후원 민주주의(federal patronage democracy )가 전개됨에 따라 철저하고 경쟁적으로 너그러운 연금 지급의 자유화가 이루어짐.
What happened after the mid-1870s to the Civil War pensions system?
남북전쟁 후 연금의 자유화가 이루어진 배경에 대해서는 i) 참전용사들의 조직화된 로비에 기인한다는 압력집단 가설(pressure group thesis), ii) 북부 산업가들이 보호관세를 유지하기 위해 연금 지출의 확대를 지지했다는 가설 등이 있으나, 스카치폴은 주된 원인을 19세기 미국 정치 구조에서 찾고 있다. 즉 남북전쟁 이후 전개된 공화당과 민주당 간 경쟁에서 남북전쟁 참전 연금의 확대가 전 지역과 계층을 아우르는 유권자 확보 차원에서 중요한 분배 정책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p 90) 전후 복구 시기 이후, 민주당은 관세 인하와 연금 억제를 지지했으나 공화당은 넉넉한 분배 정책과 연금 지급, 관세 유지를 지지함 (p 91)
From the Arrears Act to Congressional and Party Patronage
1879년 이래 남북전쟁 연금 지급은 의회와 연금국(Pension Bureau) 내에서의 경쟁적 연금 후원 정치 (patronage politics)의 양상을 띠게 됨 (p 92). 연금국은 사안 별 연금 분배에 있어 당파적 재량(partisan discretion)을 발휘함으로써 공화당이 은퇴 군인들에 대한 확고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도왔다. (p 94-95). 1880년대는 높은 관세 수입으로 인한 재정수입의 과다가 가장 큰 재정적 문제였는데, 공화당은 높은 관세를 유지함으로써 산업자본가와 노동자의 지지를 확보하는 한편 관세수입을 연금이라는 인기 있는 명목으로 지출함으로써 퇴역 군인들의 지지까지 확보하였다. (p 95-96) 연금은 높은 관세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 도시거주자와 농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이들의 (p 97) 지지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민주당은 관세와 연금 모두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p 94)
연금의 혜택이 모든 취약 계층이나 노동자 계층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남부 출신 백인들, 남북전쟁 후 북부로 유입된 미숙련 노동자 등은 제외되었다. 그러나 남북전쟁 당시 북부의 편에 섰던 186,000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여기에는 북부의 자유 흑인들과 북부를 위해 싸운 남부의 해방 흑인 포함)에게는 공정한 연금이 지급되었다. (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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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남북전쟁 연금은 미국 역사상 가장 정치적으로 성공적이었던 사회 정책이었다. 연금의 확대는 미국의 민주주의의 번영에 걸맞게 계급과 인종을 아우르는 명예로운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p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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