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간지
유용태. 2004. 『지식청년과 농민사회혁명: 1920년대 중국 중남부 3성의 비교연구』 (서론 및 1부) 본문
유용태. 2004. 『지식청년과 농민사회혁명: 1920년대 중국 중남부 3성의 비교연구』 (서론 및 1부)
2013년 4월 7일
김대욱
서론 농민사회의 혁명을 보는 시각과 방법
Ⅰ. 20세기 동아시아 농민사회의 변혁
프랑스 혁명은 농민사회 조건에서 부르주아-농민 연합으로 성취된 민주혁명의 전형인 반면,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은 같은 조건에서 노동자-농민 동맹에 의거한 사회주의 사회 지향
농민사회는 산업화 이전 사회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도시와 농촌의 대립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전체 인구 및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농업에 존재하며, 영농이 가족 노동력을 위주로 이루어지는 사회
농민사회의 공동체에서는 공동체 질서와 상호 모순되는 계급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여전히 공동체 질서가 농민의 사고와 행위를 규율
농민을 혁명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이끈 것은 진보적 지식청년들이라는 가설
1920년대 농민협회 운동을 분석. 마을 공유재산을 물적 기반으로 삼아 토지 공유를 지향하고 협동조합을 바탕으로 직교역을 추구한 점에서 이후 농민사회주의의 토양을 제공
중국 근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20세기 중국혁명을 농민사회 내부의 매커니즘을 기초로 이해. 제국주의의 침략에 따른 ‘국가의 위기’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됨
농민사회주의 성립 과정에서 각 세력이 농민의 이해와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여 정책화하고 농민의 잠재력 역량을 세력화하는 것이 관건이었음
Ⅱ. 문제의 제기
‘농민사회’의 혁명: 지주에 대한 농민의 혁명이라는 기존의 계급론적 도식과 차별화. 농민사회의 공동체적 질서 속에 처했던 농민은 혁명의 동력이 될 요인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혁명 실현 불가. 농민대중과 결합한 지식청년의 역할을 동시에 고려.
연구 질문:
(1) 새로운 농민 운동이 왜 1920년대에 양호와 광둥 세 성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을까?
(2) 광둥은 유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양호에 비해 못 미치는 차이를 보였을까?:
정치세력의 지원이나 농민층의 계급분화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므로 세 성에 대한 비교연구 시도
Ⅲ. 연구방법
종합적 분석: 3개 성을 대상으로 조직 형성 요인과 방해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 농민협회의 조직-발전-붕괴 과정에 대하여 조직 형성(농민가정출신의 근대지식청년) 및 방해 요인(공산 및 공단), 행위 주체와 사회구조의 상호작용을 함께 고려하면서 동태적으로 접근
지식청년의 중요성: 농촌 내부의 세력 및 자원을 외부와 연결하고 결합하는 고리이자 통로
공산과 공당의 중요성: 공산은 공유재산이지만 실제로는 출연자와 관리자층이 수익금의 배분을 통해 농민을 지배하였고, 무장력도 유지. 공당은 향촌 권력자의 권위를 합법화하는 상징적 자원. 공산의 출연은소농의 몰락을 방지해 재생산을 꾀하고, 붕괴되는 공동체적 질서를 재건하여 계급지배에 활용하려는 지배전략. 공산이 많은 곳일수록 향촌권력이 안정되고 강력함
Ⅳ. 기존연구의 비판적 검토
기존 연구: 자발론(소작농 또는 빈농이라는 계급적 존재로부터 곧장 농민의 자발성과 혁명성이 도출) vs. 매개론(도시의 혁명세력에 의해서만 조직되고 혁명 세력화될 수 있음)
필자의 관점: 농민이 억압자에 맞서 생존을 위한 저항을 자발적으로 벌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지배구조를 변혁하려는 새로운 농민 운동을 시작하고 전개할 수는 없다는 것
외인론의 연구 경향: 소수의 특정 정당원의 역할. 당의 정책적 지원, 당군에 의한 북벌 전쟁, 도시의 급진적 지식인들과 그들이 전파하는 급진적 사조 등을 강조(+@)
내인론의 연구 경향: 토지문제를 비롯한 농민의 경제적 요구, 상업화에 따른 농민 내부의 계급 분화 중시. 그러나 경제상의 문제나 요구가 있다고 곧장 조직이 형성되는 것은 아님. 사회구조상의 조직 방해 요인이 행위 주체의 조직 형성요인으로 극복될 때 농민협회 조직이 발전.
무어와 스카치폴: 혁명과정에서 농민이 어떤 기제에 의해 결집하고 참여했는지를 공동체론의 시각에서 접근. 프랑스와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공동체 성원으로서 마을 공유자원을 똑같이 이용할 권리에 근거를 둔 공동체적 연대가 농민의 혁명적 결집을 촉진. 그러나 공산을 주로 경제영역에 국한해서 조직 형성요인으로만 이해. 중국에는 공유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오해
제1부 전환기 농민사회의 권력관계
제1장 농민 생활 공간의 공산질서와 권력관계
1. 공산 관리자의 지위
Ⅰ. 공산의 형성
농민의 일상 생활 공간의 질서와 권력관계를 밝히기 위해 공산, 공당, 공창의 형성과 기능을 분석
공산의 의의: 지배집단이 향촌 공무를 주도하고 각종 자원을 관리하면서 향민에게 배분할 때 향민은 배분자의 권력과 권위를 인정. 공산을 마련하고 관리하며 이용하는 것이 향민들과 향촌 권력자 사이에 교환되는 핵심 내용
공전을 비롯한 공산은 종족 또는 향촌의 지역 유력자들이 출연하면서 형성된 경우가 대부분. 향정을 주도한 신사, 지주, 부상을 향촌권력자(토착 지배세력)이라고 부름
공산 설치의 사상적 이유: 성리학적 명분론에서 강조되는 사대부의 도리인 공도나 선을 쌓아 공덕을 베풀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불교 및 도교적 인생자세에서 유래
지배논리의 측면: 공전의 관리업무를 출연자나 직계자손이 담당했기 때문에 지주들은 족전 출연을 사유토지의 소유권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음. 전통적인 균분 상속제도로인한 소유권의 분산과 약화 막음. 공전의 출연을 바탕으로 각종 향촌 공공기구를 장악하여 향촌 권력관계에서 주도적인 위치 차지
공산의 출연은 신사, 지주, 부상이 자신의 경제적 자본을 정치적, 사회적 자원 및 문화적, 상징적 자원으로까지 전환시켜 향촌 권력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핵심 고리
Ⅱ. 공산관리자의 지위
경작권의 분배: 공전 관리자들은 공전을 소작방식으로 경작하게 하여 소작료를 징수. 공전의 증가는 소작농의 증가를 가져왔고 그 결과 소작경쟁을 부채질하여 소작조건은 더욱 악화. 공전이 많은 지역에서는 공전 관리자들이 소작권 배분을 근거로 소작농에게 힘을 행사
공산 수익금의 분배: 대부분 제사 및 사당 유지비와 세금 공무비로 사용. 공무비의 상당부분은 족산 관리인에게 지급된 보수. 학비보조.
분배 차등화: 족전 출연자 및 관리자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분배 몫을 차등화. 족인의 생계가 불안정할수록 족산 배분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므로 족전 출연자와 관리자의 권력 커짐
공전 출연자의 향촌 내 지위: 유교 문화의 핵심인 명륜당, 서원, 의숙을 비롯한 교육기관과 각종 선당을 설치 운영함으로써 향촌 내에서 교화 기능을 담당하면서 문화적 자원을 장악. 여분의 공산수익금을 향민의 구휼미나 염가판매미로 방출하기도 했음
국가권력의 호구파악이 부실한 상황에서 종족조직의 관리자가 국가 징세업무의 대행자 역할을 담당. 족산을 지배하는 소수 유력자들이 향촌 내의 경제와 정치를 모두 독점하는 구조
빈농들은 비밀결사에 가담하는 것 말고는 불평등의 질서에서 벗어날 농민조직이나 정치적 보호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 질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음
Ⅲ. 20세기초 공산의 쇠퇴와 사유화
공산은 20세기 들어서 크게 쇠퇴. 상품경제와 도시화 경향으로 농산물과 토지의 상품화 촉진. 공전의 매매 금지 원칙 동요. 종족 지도부나 공전 관리자들이 영리활동에 나서서 공전을 매각.
과거제 폐지: 공산 출연자에게 국가가 신사신분을 수여하여 인정해준 권위의 근거가 사라짐으로써 지주와 부상들이 더 이상 공산을 출연하지 않게 됨
민국의 성립: 지방자치 실시 방침이 공포되면서 자치 경비는 공산 수익금으로 충당하도록 함. 비용 마련을 구실로 공공창곡을 팔아치워 횡령하고 농민에 대한 세금 부과
공산의 출연자와 소작청부인을 포함하는 관리자들이 국민혁명기 농민협회와 충돌하면서 토호열신으로 지목받게 됨
2. 공당의 제사의례와 상징권력
Ⅰ. 제사의례의 위계화
제사의 독점은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정치권력의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내재요소의 하나. 국가가 정치적 목적에서 지방의 제사의례를 통제.
제사의례의 등급화: 재산과 정치권력 분배의 등급화와 일치. 제사의례가 정치권력을 비롯한 각종 자원배분의 등급화를 합법화하여 유지하는데 유리하게 작용
제사권의 제한: 청대의 종족조직은 신사가 아니면 제사를 주관할 수 없었음. 제사권은 종족이나 향촌 안에서의 지배권을 조상신이나 마을 수호신의 권위에 결부시켜 정당화하는 상징권력
사제의 위계화: 제사의례의 정치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 위계화된 질서 속에서 국가적 규모의 단결을 이루어냄으로써 하나의 국가 권력을 유지
Ⅱ. 제사의례의 양면 기능, 정치화와 민속화
제사의례는 의례를 주관하는 자에게 군권신수의 연장선에서 지배권력의 합법성을 보증할 뿐만 아니라 권력행사의 정당성과 권위를 보증
전통적 농민봉기 주동자들은 기존의 제사 주관자를 배제한 채 독자적으로 사제를 거행하여 투쟁에 앞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신감 강화. 제사권과 제사 의례의 기능을 역이용한 사례
민속화: 제사의례는 향민과 족인에게 정신적 위안과 오락 및 단합의 기회를 제공하는 민속화의 측면이 있음. 정치경제적 보호기제와 문화적 기제의 결합
Ⅲ. 제사의례의 쇠퇴와 권위의 세속화
청말-민국 초기에 정치적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면서 결정적으로 폐지. 지역단위 제사 중 최고 위계인 공자제사는 지속되었으나 의례의 신성성이 크게 감퇴.
조상제사는 쇠퇴하였지만 지속됨. 친족의 혈연관계를 기초로 한 의례의 강고함을 보여줌
3. 향촌자위용 민단과 공유무기
Ⅰ. 향촌 민단과 그 물적 기반, 공산
민국시기 공산과 공당의 제사의례가 쇠퇴할수록 권력기반으로서 향촌자위용 무력이 더욱 중요. 토비방어를 위한 자위 무력이 절실해졌기 때문
공창: 향민들이 보유한 무기를 공무유기를 뜻하는 공창이란 이름으로 불러 넓은 의미의 공산에 포함. 민단과 공창은 공산 및 종족 질서와의 연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함
공공창고의 창곡이 쇠퇴할수록 그 관리자는 빈농들에게 더 큰 위세를 부릴 수 있었음. 향촌권력자들은 공공의 곡미 분배과정을 민단과 연계시켜 향민 위에 군림하는 군사화된 지배 매커니즘을 보여줌
향촌 권력자들은 공산 관리자로서 정부 경찰병력보다 월등한 무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국가 권력의 직접통제 밖에 자의적인 지배영역을 유지
Ⅱ. 향촌 민단과 그 사회적 기반, 종족
동족 거주 향촌의 민단은 경제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인적 구성 면에서도 종족질서와 조직적으로 밀접하게 결부
향촌 민단은 공산 또는 농민의 경비분담에 의해 설립되었고 신사, 지주의 출연도 향촌 방위를 위한 것이므로 마을 농민들은 민단의 무기를 공창, 즉 향촌의 공유무기로 생각.
민단의 역할: 지주계급의 소작료 징수기관인 동시에 현 정부의 징세기관. 준사법적 역할도 담당. 향촌 내 공전출연자층이 담당해온 징세 역할을 무력동원에 의지해 수행
Ⅲ. 민단 무력의 지역적 분포
공식 민단의 무력 외에도 대지주가의 사적인 무력, 수시로 지주 측과 결탁하는 비밀 결사나 토비의 무력 존재. 지역 토착세력이 향촌 권력을 유지하는 무력은 공식 민단 병력보다 컸음
-> 20세기 들어 전통적인 공도와 공산 및 공당의 제사의례가 쇠퇴함에 따라 향촌권력자의 권력과 권위가 약화되고 주록 무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음
<코멘트>
중국 공산혁명과 농민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책은 아니지만, 중국혁명을 농민사회의 내부 매커니즘을 통해서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비교역사사회학과 역사학의 연구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유용태_지식청년과 농민사회혁명_서론1장_130407 (1).hwp
'발제/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제] 7회차, 13년 4월 27일 -9장 (0) | 2013.04.27 |
---|---|
[발제] 7회차, 13년 4월 27일 (0) | 2013.04.26 |
[발제] 6회차, 13년 4월 7일 (0) | 2013.04.07 |
[발제] 배링턴 무어 4장(중국) (0) | 2013.03.25 |
[발제 및 후기] 5회차, 13년 3월 24일 - 27일에 수정 (0) | 2013.03.23 |